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투바 인민공화국 (문단 편집) === 건국과 [[제2차 세계 대전]] === [[1920년]] 러시아 적군이 투바에 진입하고자 탄누 우랸하이를 통치하던 중화민국 관리에게 철수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1921년]] 3월 러시아 [[백군]]이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먼저 투바에 진입하였다. 이후 백군은 [[국민혁명군]]을 몰아내고 투바를 점령한다. 1921년 7월 적군은 울란바토르를 재탈환하고 그 해 8월 백군을 몰아내고 투바를 점령한다. 적군과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 하에 투바 내 [[공산당]] 세력이 [[1921년]] 8월 탄누 투바(Танну-Тува)로서 독립을 선언한다. [[10월 29일]]에는 투바 인민 혁명당이 결성된다.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았던 [[복드 칸국]] 역시 [[1922년]] 결성된 [[소련]]의 지원 아래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계승된다. 당시 탄누 투바를 인정한 국가는 오직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몽골 인민 공화국 뿐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둘 다 [[미승인국]]이었다.] 원래 투바인들이 바랐던 것은 문화적, 민족적으로 가까운 [[몽골|몽골 인민 공화국]]으로의 합병이었다. 투바는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작동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고 태생적으로 소련이나 몽골 중 한 나라에는 종속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도 물론 투바의 합병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이를 앎에도 투바 지역의 풍부한 자원과 방어에 탁월한 산맥을 탐내 일부러 투바의 몽골로의 합병을 방해하며 점진적으로 소련으로의 합병을 위한 밑작업을 했다. 몽골과 투바의 차이를 강조하고 투바에 친소련 관료를 앉히며 스탈린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대표적인 행각이었다. [[대조국전쟁]]이라는 위기는 이러한 작업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1926년]] 11월 국명을 탄누 투바에서 투바 인민 공화국으로 변경한다. 초대 [[총리]] 쿨라르 돈두크(Куулар Дондук)는 [[티베트 불교]]를 기반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접목한 [[복드 칸국]]과 흡사한 독립 국가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무신론]]을 고수하던 [[소련]]과의 마찰을 빚게되었고 결국 [[1929년]] 소련에 끌려가서 [[1932년]] 처형당한다. 이후 수천 명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과 [[샤먼]]들이 처형당했다. 이후 2대 총리 살차크 칼바크회레코비치 토카(Салчак Калбак-Хөрекович Тока)[* [[1944년]] [[10월 11일]] 투바 인민 공화국이 [[소련]]에 합병된 이후에는 투바 공산당 서기로 살다가 죽었는데, 이 기간까지 합치면 [[1972년]]까지 41년간 집권한 셈이다. 그리고 이 사람의 부인이였던 헤르테크 아므르비토브나 안치마토카(Хертек Амырбитовна Анчимаа-Тока)도 좀 비범하다. [[1940년]], 세계 최초의 선출직 여성 국가 원수가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8세. 불과 4년 뒤 소련에 합병되어, 마지막 국가 원수가 되어버렸다.]는 [[1932년]]부터 [[1944년]] 소련에 합병되기까지 집권했다. 투바 인민 공화국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소련]]의 지시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체제 기반이 건설된 [[1930년]] [[티베트 불교]] 세력을 숙청하고 [[집단농장]]을 설립, [[키릴 문자|신문자]] 반포, [[몽골어]] 사용 금지 등을 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소련]], [[몽골 인민 공화국]]과 함께 [[독소전쟁]]에 참가하여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1943년]] 6월, 1개 [[보병]] 연대와 [[기병]] 대대를 파병했고, 소련에서 [[전차]] 승무원을 훈련시켜 참전시켰다. 이 전차 승무원 중 한 사람이 [[소련영웅]] 칭호를 받았는데,[* 원래 [[트랙터]] 운전사였다가 [[T-34-76|T-34]] 운전수가 되었다.] [[투바 공화국]] 최초의 [[항공기]]에 이 사람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 외에도 소련에게 당시 약 2백만 루블(!) 가치의 금광을 빌려주고[* 투바 지역은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그것과 별개로 종전까지 매년 1백만 루블 가치의 금을 소련에게 지원해 경제 안정에 도움을 줬다. 또 대부분의 가정에서 10~100마리 정도의 가축을 '''자발적으로''' 전쟁에 쓰라고 소련에 지원했다. 당시 한 사람이 약 130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그 생산물을 취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헌신. 1944년 봄에는 막 나치로부터 해방된 [[우크라이나]]에 27,500마리의 소를 보내주어 오랜 전쟁으로 생산력으로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버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 외에도 품목 당 수만 개 단위의 공산품들을 생산하여 소련에 지원했고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이 물자들의 90%는 기부품이었다는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